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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 스트리트 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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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E 스트리트 밴드는 1970년대 초 뉴저지 해안에서 결성된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백 밴드이다. 스프링스틴의 앨범과 라이브 공연에 참여하며 록 음악 기반의 다양한 장르를 수용하고 사회 비판적인 가사와 서정적인 멜로디를 선보였다. 1975년 앨범 'Born to Run' 발매와 함께 전성기를 맞이했으며, 1989년 해체 후 1995년과 1999년에 재결합하여 현재까지 활동하고 있다. 밥 딜런, 미트 로프 등 다양한 음악가와 협업했으며, 'Live/1975–85', '뉴욕 시티 라이브' 등 다수의 앨범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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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 스트리트 밴드 - [음악 그룹]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2009년 공연 중인 브루스 스프링스틴과 E 스트리트 밴드
2009년 공연 중인 브루스 스프링스틴과 E 스트리트 밴드
출신지벨마, 뉴저지주, 미국
장르팝 록
로큰롤
활동 기간1972년–1989년
1995년
1999년–현재
레이블컬럼비아
관련 활동브루스 스프링스틴
사우스사이드 조니
스틸 밀
현재 구성원브루스 스프링스틴
게리 탤런트
로이 비턴
맥스 와인버그
스티븐 밴 잰트
닐스 로프그렌
패티 시알파
추가:
수지 티렐
찰스 조다노
제이크 클레먼스
이전 구성원클래런스 클레먼스
대니 페더리치
비니 로페즈
데이비드 샌셔스
어니스트 카터

2. 역사

1960년대 후반과 1970년대 초, 뉴저지 해안의 애스버리 파크를 중심으로 활발한 음악 활동이 있었다. 이곳에서 브루스 스프링스틴과 사우스사이드 조니를 비롯한 E 스트리트 밴드의 초기 멤버들이 두각을 나타냈다. 클래런스 클레몬스, 대니 페데리치, 비니 로페즈, 데이비드 샌시어스, 개리 탤런트, 스티븐 반 잰트는 스프링스틴과 함께, 또는 그 없이도 다양한 밴드에서 활동하며 실력을 쌓았다. 1972년, 스프링스틴이 CBS와 음반 계약을 체결하면서 데뷔 앨범 ''Greetings from Asbury Park, N.J.''를 녹음하고 활동하기 위해 뉴저지 해안 출신의 음악가들을 선발했다. 1973년에는 스프링스틴과 함께 두 번째 앨범 ''The Wild, the Innocent and the E Street Shuffle''을 녹음했다.

스티븐 반 잰트는 프로듀서 겸 작곡가로도 명성을 쌓았다. 스프링스틴 앨범 제작 외에도 사우스사이드 조니 & 애즈버리 주크스, 로니 스펙터, 게리 U.S. 본즈와 함께 작업했으며, 이후 리틀 스티븐이라는 이름으로 솔로 활동을 시작했다. E 스트리트 밴드와 스프링스틴은 이러한 프로젝트에 정기적으로 도움을 주었다. 1977년, 로니 스펙터와 함께 빌리 조엘의 "세이 굿바이 투 할리우드" 커버와 밴 잰트의 오리지널 곡 "Baby Please Don't Go"가 담긴 싱글을 녹음했는데, 이는 밴드가 전체 크레딧을 받은 첫 번째 사례였다. 1978년, 맥스 와인버그는 사우스사이드 조니와 함께 ''Hearts of Stone''을 녹음하며 "명예로운 주크"가 되었다.[1]

1980년대 초, E 스트리트 밴드는 게리 U.S. 본즈의 ''Dedication''과 ''On the Line'' 앨범에서 백업을 제공하며 그의 경력을 다시 시작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스티븐 반 잰트는 스프링스틴과 함께 이 두 앨범을 프로듀싱했다. 각 앨범에는 스프링스틴과 밴 잰트의 곡, 그리고 케이준 클래식 "졸 블론"의 커버가 수록되었다. 이러한 성공을 바탕으로 밴 잰트는 EMI와 솔로 음반 계약을 맺었다. 1982년, 데뷔 앨범 ''Men Without Women''을 녹음하기 위해 클래런스 클레몬스, 대니 페데리치, 개리 탤런트, 맥스 와인버그 등 여러 멤버들을 영입했다. 이 앨범은 리틀 스티븐 & 디사이플스 오브 소울이라는 이름으로 발매되었다.[1]

2. 1. 결성 및 초기 (1972-1974)

E 스트리트 밴드는 1972년 10월에 결성되었지만, 1974년 9월에 공식적으로 이름이 붙여졌다.[2][3] 초기 멤버는 개리 탤런트(베이스), 클래런스 클레몬스(색소폰), 대니 페데리치(키보드, 아코디언), 비니 "매드 독" 로페즈(드럼), 데이비드 샌시어스(키보드)였다.

밴드 이름은 뉴저지주 벨마에 있는 샌시어스 어머니 집 주소에서 따왔다. 밴드는 샌시어스 어머니의 허락을 받고 차고에서 연습을 했다.[4] 텐스 애비뉴 프리즈 아웃"이라는 노래 때문에 밴드가 E 스트리트와 10번가의 모퉁이에서 시작되었다고 잘못 알려지기도 했지만, 실제 샌시어스의 집은 E 스트리트 1107번지에 있었다.[4]

뉴저지주 벨마의 E 스트리트와 10번가 교차로


브루스 스프링스틴CBS와 계약 후, 1973년 1월 데뷔 앨범 ''애즈버리 파크에서 온 인사''를 발매했다. 밴드는 1972년 10월부터 전국 투어를 시작했지만, 샌시어스는 앨범에 참여했음에도 불구하고 초기 투어에는 참여하지 못했고, 1973년 6월부터 밴드와 함께 정기적으로 공연했다.

1974년 2월, 로페즈가 밴드를 떠나고 어니스트 "붐" 카터가 잠시 드럼을 맡았다. 같은 해 8월, 샌시어스와 카터는 재즈 퓨전 밴드 톤을 결성하기 위해 밴드를 떠났다. 1974년 9월, 로이 비탄(키보드)과 맥스 와인버그(드럼)가 밴드에 합류했다. 바이올리니스트 수키 라하브는 1975년 3월 이스라엘로 이민 가기 전까지 잠시 밴드 멤버로 활동했다. 1975년 7월, 스프링스틴과 오랫동안 함께 활동했던 스티븐 반 잰트(기타, 보컬)가 정식으로 밴드에 합류했다.

Garry W. Tallent


Roy Bittan

2. 2. 전성기 (1975-1989)

1975년 본 투 런 앨범 발매와 함께 E 스트리트 밴드는 전성기를 맞이했다. 스티븐 밴 잰트가 밴드에 합류하면서, 밴드는 음악적으로 더욱 발전했고 상업적으로도 큰 성공을 거두었다.[1] 어둠의 가장자리, 더 리버, 본 인 더 유에스에이 앨범에 참여하며 스튜디오 뮤지션들 사이에서 명성을 쌓았다.[1]

하지만 밥 시거의 실버 불릿 밴드나 톰 페티 앤 더 하트브레이커스와 같은 백 밴드와는 달리, E 스트리트 밴드는 스프링스틴의 스튜디오 앨범에서 전체 크레딧을 받지 못하고 개별 멤버들만 이름을 올렸다.[1] 밴드가 앨범 연주의 대부분을 담당했지만, 앨범은 스프링스틴의 이름으로만 발매되었다.[1] E 스트리트 밴드는 ''더 리버''의 내부 라이너 노트와 ''본 인 더 유에스에이''의 "Performed by" 크레딧을 제외하고는 앨범 자료 어디에도 언급되지 않았다.[1]

콘서트에서는 라이브 공연이 거의 항상 브루스 스프링스틴 & E 스트리트 밴드로 표기되었고, 스프링스틴은 무대에서 밴드를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1] 각 콘서트에서 스프링스틴은 한 곡(1974년부터 1984년까지는 거의 항상 "로잘리타")을 연장하여 각 밴드 멤버를 소개하며 "교수" 로이 비탄, "마이애미" 스티브 반 잔트, "팬텀" 댄 페데리치, "마이티" 맥스 웨인버그, 개리 "W." 탈렌트, "빅 맨" 클래런스 클레몬스 등의 별명을 붙여주었다.[1] 스프링스틴은 콘서트 수익을 밴드 멤버들과 동등하게 분배했는데, 이는 음악 업계에서 백 밴드에게는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1]

1979년 스프링스틴과 밴드가 ''노 누크스'' 앨범과 ''노 누크스'' 영화에 출연했을 때, 라이브 공연은 두 사람 모두에게 크레딧되었다.[1] 밴드는 브루스 스프링스틴 & E 스트리트 밴드로 크레딧된 ''라이브/1975–85'' 앨범으로 스프링스틴 앨범에서 첫 번째 전체 크레딧을 받았다.[1] 이후의 모든 라이브 녹음 및 콘서트 DVD도 두 사람 모두에게 크레딧되었다.[1]

밴 잰트는 프로듀서/송라이터로서의 명성을 쌓기 시작했다. 스프링스틴 앨범 프로덕션에 도움을 주는 것 외에도, 사우스사이드 조니 & 애즈버리 주크스, 로니 스펙터, 게리 U.S. 본즈와 함께 작업했으며, 이후 리틀 스티븐이라는 이름으로 솔로 경력을 시작했다.[1] E 스트리트 밴드와 스프링스틴은 이 모든 프로젝트에 정기적으로 도움을 주었다.[1] 1977년, 그들은 빌리 조엘의 곡 "세이 굿바이 투 할리우드"의 커버와 밴 잰트의 오리지널 곡 "Baby Please Don't Go"를 담은 싱글을 로니 스펙터와 함께 녹음했는데, 이 싱글은 밴드가 전체 크레딧을 받은 첫 번째 사례였다.[1] 1978년, 웨인버그는 사우스사이드 조니와 함께 ''Hearts of Stone''을 녹음하면서 "명예로운 주크"가 되었다.[1]

1980년대 초, E 스트리트 밴드는 게리 U.S. 본즈의 경력을 재개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1] ''Dedication''과 ''On the Line'' 앨범에서 백업을 제공했고, 밴 잰트는 스프링스틴과 함께 이 두 앨범을 프로듀싱했다.[1] 각 앨범에는 스프링스틴과 밴 잰트의 곡, 그리고 케이준 클래식 "졸 블론"의 커버가 수록되었다.[1] 이 앨범들의 적당한 성공은 밴 잰트에게 EMI와의 솔로 음반 계약을 안겨주었다.[1] 1982년 데뷔 앨범 ''Men Without Women''을 녹음하기 위해 클레몬스, 페데리치, 탤런트, 웨인버그, 그리고 로젠버그와 펜더를 포함한 여러 주크스를 빌려왔으며, 이 앨범은 리틀 스티븐 & 디사이플스 오브 소울이라는 이름으로 발매되었다.[1]

2. 3. 해체 및 재결합 (1989-현재)

1989년, 브루스 스프링스틴은 E 스트리트 밴드 멤버들에게 밴드 활동이 없을 것이라고 알렸다. 스프링스틴은 이후 다른 뮤지션들과 함께 ''Human Touch''와 ''Lucky Town'' 앨범을 녹음했다.

1995년, 스프링스틴은 ''그레이티스트 히츠'' 앨범 작업을 위해 밴드를 일시적으로 다시 소집했고, 1998년에는 ''Tracks'' 박스 세트 작업을 위해 다시 모였다.

1999년, 스프링스틴과 E 스트리트 밴드는 공식적으로 재결합하여 Reunion Tour를 시작했다. 이 투어는 2000년까지 계속되었고, HBO 콘서트 스페셜과 ''Bruce Springsteen & the E Street Band: Live in New York City''라는 제목의 CD와 DVD로 발매되었다.

2002년에는 재결합된 밴드가 ''The Rising'' 앨범을 발매했고, The Rising Tour를 시작했다. 2007년 ''Magic'' 앨범 발매 후 Magic Tour가 이어졌다. 2009년 Working on a Dream Tour 이후, 밴드는 클래런스 클레몬스의 건강 문제로 인해 잠시 휴식기를 가졌다. 클레몬스는 2011년 6월 18일 뇌졸중 합병증으로 사망했다.

2012년, Wrecking Ball Tour를 시작으로 E 스트리트 밴드는 스프링스틴과 계속해서 활동하고 있다. 2014년, E 스트리트 밴드는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3. 구성원

E 스트리트 밴드는 1972년 10월에 결성되었지만, 1974년 9월에 정식으로 명칭이 정해졌다.[2][3] 브루스 스프링스틴은 여러 백킹 밴드를 결성했지만, E 스트리트 밴드는 결성 이후 거의 지속적으로 함께 활동해왔다.

초기 구성원은 개리 탤런트(베이스), 클래런스 클레몬스(색소폰), 대니 페데리치(키보드, 아코디언), 비니 "매드 독" 로페즈(드럼), 데이비드 샌시어스(키보드)였다. 밴드 이름은 뉴저지주 벨마에 있는 샌시어스 어머니 집 주소인 E 스트리트에서 따왔다. 샌시어스 어머니는 밴드가 자신의 차고에서 연습하는 것을 허락했다.[4]

1974년 2월, 로페즈가 해고되고 어니스트 "붐" 카터가 잠시 그를 대체했다. 같은 해 8월, 샌시어스와 카터는 재즈 퓨전 밴드 톤을 결성하기 위해 떠났다. 1974년 9월, 로이 비탄(키보드)과 맥스 와인버그(드럼)가 합류했다. 수키 라하브(바이올린)는 1975년 3월 이스라엘로 이민 가기 전 잠시 밴드 멤버였다. 스티븐 반 잰트(기타, 보컬)는 1975년 7월에 정식 합류했다.

이 라인업은 1980년대 초까지 유지되었고, 1984년에 반 잰트가 솔로 활동을 위해 탈퇴했다.[5] 그는 1995년에 다시 합류했다. 1984년 6월, 닐스 로프그렌(기타, 보컬)과 패티 시알파(보컬, 기타)가 밴드에 합류했다.

2002년부터 수지 타이어(바이올린, 기타, 보컬)가 밴드와 함께 활동했다. 그녀의 정식 멤버 여부는 불분명하지만,[6][7] 스프링스틴은 "수지는 우리와 함께할 것입니다."라고 언급했다.[8]

2007년 11월, 대니 페데리치가 흑색종 치료를 위해 활동을 중단하고 찰스 지오다노가 그를 대체했다.[9] 페데리치는 2008년 3월 20일 인디애나주 인디애나폴리스 공연에 잠시 복귀했지만,[10] 2008년 4월 17일에 사망했다.[11][12]

클래런스 클레몬스는 2011년 6월 12일 뇌졸중으로 6월 18일에 사망했다.[13][14] 그의 조카 제이크 클레몬스가 2012년부터 색소폰을 연주하고 있다.[15][16]

E 스트리트 밴드는 마이애미 혼스라고 불리는 호른 섹션의 도움을 받기도 했다. 이 섹션에는 리치 로젠버그(트롬본), 마크 펜더(트럼펫) 등이 포함된다.

3. 1. 현재 구성원

멤버역할밴드 합류 시기음악적 특징
브루스 스프링스틴리드 보컬, 기타, 피아노1972년 10월E 스트리트 밴드의 리더이자 핵심 작곡가이다.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는 음악적 역량을 보여준다.
개리 탤런트베이스, 백 보컬1972년 10월밴드의 리듬 섹션을 담당하며, 안정적인 베이스 연주를 제공한다.
로이 비탄피아노1974년 9월서정적이고 웅장한 피아노 연주로 밴드의 사운드를 풍부하게 만든다.
맥스 와인버그드럼1974년 9월파워풀하고 정교한 드럼 연주로 밴드의 에너지 넘치는 라이브 공연에 기여한다.
스티븐 밴 잰트기타, 백 보컬1975년 7월
(1984년 탈퇴, 1995년 재합류)
블루스에 기반한 강렬한 기타 연주와 허스키한 보컬이 특징이다.
닐스 로프그렌기타, 백 보컬1984년 7월화려한 기타 테크닉과 슬라이드 기타 연주로 밴드에 독특한 색채를 더한다.
찰스 지오다노오르간2007년 11월대니 페데리치의 사망 이후 밴드에 합류하여 오르간 연주를 담당한다.
제이크 클레몬스색소폰2012년 3월클래런스 클레몬스의 조카로, 삼촌의 뒤를 이어 색소폰 연주를 담당한다.
패티 섈파백 보컬, 어쿠스틱 기타1984년 7월브루스 스프링스틴의 아내로, 허스키한 보컬과 어쿠스틱 기타 연주를 선보인다.


3. 2. 이전 구성원

다음은 E 스트리트 밴드를 떠난 이전 구성원들에 대한 정보이다.

  • 비니 "매드 독" 로페즈: 1972년 10월부터 1974년 2월까지 밴드의 초기 드러머였다. 로페즈는 밴드와 함께 스프링스틴의 첫 두 앨범인 ''애즈버리 파크에서 온 인사''와 ''The Wild, the Innocent and the E Street Shuffle''을 녹음했다. 그는 1974년 2월에 해고되었고, 잠시 어니스트 "붐" 카터로 교체되었다.

  • 데이비드 샌시어스: 1972년 10월부터 1974년 8월까지 키보드와 보컬을 담당했다. 샌시어스는 스프링스틴의 첫 두 앨범에 참여했지만, 1974년 8월에 카터와 함께 자신의 재즈 퓨전 밴드인 톤을 결성하기 위해 밴드를 떠났다.

  • 어니스트 "붐" 카터: 1974년 2월부터 1974년 8월까지 잠시 드럼을 담당했다. 그는 샌시어스와 함께 톤을 결성하기 위해 밴드를 떠났다.

  • 수키 라하브: 1974년 9월부터 1975년 3월까지 바이올린을 연주했다. 그녀는 1975년 3월에 이스라엘로 이민을 가면서 밴드를 떠났다.

  • 스티븐 반 잰트: 1975년 7월부터 1984년까지 기타와 보컬을 담당했다. 그는 자신의 솔로 경력을 쌓기 위해 밴드를 떠났지만, 1995년에 다시 합류했다.

  • 대니 페데리치: 1972년 10월부터 활동한 오르간, 아코디언, 글로켄슈필 연주자였다. 2007년 11월, 흑색종 치료를 위해 잠시 활동을 중단했고, 찰스 지오다노가 그를 대신했다.[9] 2008년 3월 20일, 인디애나주 인디애나폴리스에서 열린 공연에 잠시 복귀했지만,[10] 2008년 4월 17일에 흑색종으로 사망했다.[11][12]

  • 클래런스 클레몬스: 1972년 10월부터 2011년 6월 18일 사망할 때까지 색소폰과 보컬을 담당했다. 2011년 6월 12일 뇌졸중을 겪었고, 합병증으로 인해 6월 18일에 사망했다.[13][14] 그의 조카인 제이크 클레몬스가 2012년부터 색소폰 연주를 이어받았다.[15][16]

3. 3. 투어링 멤버

E 스트리트 밴드는 정식 멤버 외에도 다양한 투어링 멤버를 통해 음악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었다.

이름악기활동 기간
수키 라하브바이올린, 기타, 백 보컬1974년 9월 ~ 1975년 3월
수지 타이렐바이올린, 기타, 백 보컬2002년 8월 7일 ~ 현재
마이오 크루즈색소폰1988년 2월 25일 ~ 1988년 8월 3일
에디 마니언색소폰1988년 2월 25일 ~ 1988년 8월 3일, 2012년 3월 18일 ~ 2014년 5월 18일
마크 펜더트럼펫1988년 2월 25일 ~ 1988년 8월 3일
마이크 스펭글러트럼펫1988년 2월 25일 ~ 1988년 8월 3일
커트 램트럼펫2009년 8월 19일 ~ 2014년 5월 18일
배리 다니엘리언트럼펫2012년 3월 18일 ~ 2014년 5월 18일
리치 로젠버그트롬본1988년 2월 25일 ~ 1988년 8월 3일
클라크 게이튼트롬본2012년 3월 18일 ~ 2014년 5월 18일
커티스 킹백 보컬, 퍼커션2009년 4월 1일 ~ 2014년 5월 18일
신디 미젤백 보컬, 퍼커션2009년 4월 1일 ~ 2014년 5월 18일
미셸 무어백 보컬, 퍼커션2012년 3월 18일 ~ 2014년 5월 18일
에버렛 브래들리백 보컬, 퍼커션2012년 3월 18일 ~ 2014년 5월 18일
제이 웨인버그드럼2009년 4월 16일 ~ 2009년 10월 9일
톰 모렐로기타, 보컬2013년 3월 14일 ~ 2013년 3월 31일, 2014년 1월 28일 ~ 2014년 5월 18일



패티 섈파가 E 스트리트 밴드와 함께 공연, 하트퍼드 시빅 센터, 2007년 10월 2일


1980년대 내내 밴드 멤버들은 다양한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1985년, 로이 비탄과 스티븐 밴 잰트밥 딜런의 앨범 ''Empire Burlesque''을 위해 세션을 녹음했다. 이 녹음은 나중에 딜런의 ''부틀렉 시리즈''에 등장했다. 같은 해, 스티븐 밴 잰트는 아파르트헤이트 반대 연합을 주도했으며, 앨범과 싱글에는 브루스 스프링스틴과 클래런스 클레몬스 등이 참여했다. 개리 탤런트는 브루스 스프링스틴, 닐스 로프그렌, 클래런스 클레몬스, 맥스 와인버그, 어니스트 카터, 리치 로젠버그가 참여한 저지 아티스트 포 맨카인드의 싱글을 제작했다. 클래런스 클레몬스는 자신의 솔로 앨범 ''Hero''와 주케로 포르나차리의 앨범에서 데이비드 샌시어스와 팀을 이루었다. 클래런스 클레몬스와 닐스 로프그렌은 1989년에 링고 스타와 그의 올스타 밴드와 함께 투어를 했다.

4. 음악 스타일

E 스트리트 밴드는 브루스 스프링스틴과 함께 작업하며 다양한 음악 스타일을 선보였다. 1970년대와 1980년대에 걸쳐 스프링스틴의 대표 앨범인 ''본 투 런'', ''어둠의 가장자리'', ''더 리버'', ''본 인 더 유에스에이'' 등에 참여하며 스튜디오 뮤지션으로서 명성을 쌓았다.

스프링스틴의 스튜디오 앨범에서는 E 스트리트 밴드 전체가 아닌 개별 멤버들만 크레딧을 받았고, 앨범은 스프링스틴의 이름으로만 발매되었으나, ''터널 오브 러브''와 ''그레이티스트 히츠''와 같은 후기 앨범에서는 밴드의 이름과 멤버를 나열했다.

4. 1. 록 음악 기반의 다양한 장르 수용

E 스트리트 밴드는 1970년대와 1980년대에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본 투 런'', ''어둠의 가장자리'', ''더 리버'', ''본 인 더 유에스에이'' 앨범에 참여하며 스튜디오 뮤지션들 사이에서 명성을 쌓았다. 그러나 밥 시거의 실버 불릿 밴드나 톰 페티 앤 더 하트브레이커스와 같은 백 밴드와는 달리, E 스트리트 밴드는 스프링스틴의 스튜디오 앨범에서 전체 크레딧을 받지 못하고 개별 밴드 멤버들만 크레딧을 받았다. 각 앨범은 스프링스틴의 이름으로만 발매되었다.

콘서트에서는 라이브 공연을 거의 항상 브루스 스프링스틴 & E 스트리트 밴드로 표기했고, 스프링스틴은 무대에서 밴드의 브랜드 로고 스타일을 부각시켰다. 각 콘서트에서 스프링스틴은 한 곡(''로잘리타'')을 연장하여 각 밴드 멤버를 소개했다.

1979년 스프링스틴과 밴드가 ''노 누크스'' 앨범과 ''노 누크스'' 영화에 출연했을 때 라이브 공연은 두 사람 모두에게 크레딧되었다. 밴드는 브루스 스프링스틴 & E 스트리트 밴드로 크레딧된 ''라이브/1975–85'' 앨범으로 스프링스틴 앨범에서 첫 번째 전체 크레딧을 받았다.

4. 2. 사회 비판적 가사와 서정적인 멜로디

E 스트리트 밴드는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사회 비판적인 가사와 서정적인 멜로디를 조화롭게 표현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1970년대와 1980년대에 걸쳐 본 투 런, 어둠의 가장자리, 더 리버, 본 인 더 유에스에이 등 스프링스틴의 대표 앨범들에 참여하며 스튜디오 뮤지션으로서 명성을 쌓았다.

하지만 밥 시거의 실버 불릿 밴드나 톰 페티 앤 더 하트브레이커스와 같은 다른 백 밴드들과는 달리, E 스트리트 밴드는 스프링스틴의 스튜디오 앨범에서 전체 크레딧을 받지 못하고 개별 멤버들만 표기되었다. 밴드가 앨범 연주의 대부분을 담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앨범은 스프링스틴의 이름으로만 발매되었다. 실제로 ''더 리버''의 내부 라이너 노트와 ''본 인 더 유에스에이''의 "Performed by" 크레딧을 제외하고는 앨범 어디에도 밴드의 이름이 명시되지 않았다.

그러나 콘서트에서는 브루스 스프링스틴 & E 스트리트 밴드로 표기되었고, 스프링스틴은 각 멤버들을 소개하며 밴드를 부각시켰다.[1] 특히 각 멤버들에게 "교수" 로이 비탄, "마이애미" 스티브 반 잔트, "팬텀" 댄 페데리치, "마이티" 맥스 웨인버그, 개리 "W." 탈렌트, "빅 맨" 클래런스 클레몬스와 같은 별명을 붙여주며 개성을 강조했다.[1] 또한 스프링스틴은 콘서트 수익을 밴드 멤버들과 동등하게 분배하는, 당시 음악 업계에서 드문 관행을 보여주었다.[1]

이후 ''라이브/1975–85'' 앨범을 통해 스프링스틴 앨범에서 처음으로 전체 크레딧을 받았으며, 이후 모든 라이브 녹음 및 콘서트 DVD에서도 밴드 이름이 함께 표기되었다.[2]

4. 3. 라이브 공연의 특징

E 스트리트 밴드는 라이브 공연에서 항상 브루스 스프링스틴과 함께 "브루스 스프링스틴 & E 스트리트 밴드"로 표기되었다. 스프링스틴은 각 콘서트에서 한 곡(1974년부터 1984년까지는 거의 항상 "로잘리타")을 길게 늘여 밴드 멤버들을 한 명씩 소개했다. "교수" 로이 비탄, "마이애미" 스티븐 반 잰트, "팬텀" 댄 페데리치, "마이티" 맥스 와인버그, 개리 "W." 탤런트, "빅 맨" 클래런스 클레몬스와 같이 별명을 붙여 소개했으며, 특히 클래런스 클레몬스는 마지막에 과장된 소개로 관객을 열광시켰다.

스프링스틴은 콘서트 수익을 밴드 멤버들과 동등하게 분배했는데, 이는 음악 업계에서 백 밴드에게는 매우 드문 일이었다. 1979년 스프링스틴과 밴드가 ''노 누크스'' 앨범과 ''노 누크스'' 영화에 출연했을 때, 라이브 공연은 두 사람 모두에게 크레딧되었다. 이후 ''라이브/1975–85'' 앨범을 시작으로 모든 라이브 녹음 및 콘서트 DVD도 두 사람 모두에게 크레딧되었다.

5. 다른 음악가와의 협업

스티븐 반 잔트는 프로듀서 겸 송라이터로 명성을 쌓았다. 그는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앨범 프로듀싱을 돕는 것 외에도 사우스사이드 조니 & 애즈버리 주크스, 로니 스펙터, 게리 U.S. 본즈와 함께 작업했으며, 이후 리틀 스티븐이라는 이름으로 솔로 활동을 시작했다. E 스트리트 밴드와 스프링스틴은 이 모든 프로젝트에 정기적으로 도움을 주었다. 1977년 E 스트리트 밴드는 로니 스펙터와 함께 빌리 조엘의 "세이 굿바이 투 할리우드" 커버와 밴 잔트의 오리지널 곡 "Baby Please Don't Go"가 담긴 싱글을 녹음했는데, 이는 밴드가 전체 크레딧을 받은 첫 사례였다. 1978년 맥스 와인버그는 사우스사이드 조니와 함께 ''Hearts of Stone''을 녹음하면서 "명예로운 주크"가 되었다.

1980년대 초, E 스트리트 밴드는 게리 U.S. 본즈의 두 앨범 ''Dedication''과 ''On the Line''에서 백업을 제공하며 그의 경력을 다시 시작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밴 잔트는 스프링스틴과 함께 이 두 앨범을 프로듀싱했다.

5. 1. 사우스사이드 조니, 로니 스펙터, 게리 U.S. 본즈

E 스트리트 밴드는 1970년대와 1980년대에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앨범 ''본 투 런'', ''어둠의 가장자리'', ''더 리버'', ''본 인 더 유에스에이'' 등에 참여하며 스튜디오 뮤지션으로서 명성을 쌓았다.[2] 하지만 밥 시거의 실버 불릿 밴드나 톰 페티 앤 더 하트브레이커스와 같은 다른 백 밴드들과는 달리, E 스트리트 밴드는 스프링스틴의 스튜디오 앨범에서 전체 크레딧을 받지 못했다.[2] 밴드가 이 앨범들의 연주를 거의 다 담당했지만, 각 앨범은 스프링스틴의 이름으로만 발매되었다.[2]

하지만 콘서트에서는 브루스 스프링스틴 & E 스트리트 밴드로 표기되었고, 스프링스틴은 각 콘서트에서 밴드 멤버들을 소개하며 그들의 별명을 붙여주었다.[2] 또한 스프링스틴은 콘서트 수익을 밴드 멤버들과 동등하게 분배했는데, 이는 음악 업계에서 백 밴드에게는 거의 전례가 없는 관행이었다.[2]

5. 2. 밥 딜런, 미트 로프, 보니 타일러 등

E 스트리트 밴드는 1970년대와 1980년대에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앨범 ''본 투 런'', ''어둠의 가장자리'', ''더 리버'', ''본 인 더 유에스에이'' 등에 참여하며 스튜디오 뮤지션으로서 명성을 얻었다.[2] 하지만 밥 시거의 실버 불릿 밴드나 톰 페티 앤 더 하트브레이커스와 같은 다른 백 밴드들과는 달리, E 스트리트 밴드는 스프링스틴의 스튜디오 앨범에서 전체 크레딧을 받지 못하고 개별 멤버들만 이름을 올렸다.[3] 밴드가 앨범 연주의 대부분을 담당했지만, 각 앨범은 스프링스틴의 이름으로만 발매되었다.[4]

스티븐 반 잔트는 프로듀서 겸 송라이터로서 명성을 쌓기 시작했다. 그는 스프링스틴 앨범 제작에 도움을 주는 것 외에도 사우스사이드 조니 & 애즈버리 주크스, 로니 스펙터, 게리 U.S. 본즈와 함께 작업했고, 이후 리틀 스티븐이라는 이름으로 솔로 활동을 시작했다.[5] E 스트리트 밴드와 스프링스틴은 이 모든 프로젝트에 도움을 주었다. 1977년, 그들은 빌리 조엘의 곡 "세이 굿바이 투 할리우드" 커버와 밴 잔트의 오리지널 곡 "Baby Please Don't Go"가 담긴 싱글을 로니 스펙터와 함께 녹음했는데, 이는 밴드가 전체 크레딧을 받은 첫 사례였다.[6] 1978년, 맥스 와인버그는 사우스사이드 조니와 함께 ''Hearts of Stone''을 녹음하며 "명예로운 주크"가 되었다.[7]

1980년대 초, E 스트리트 밴드는 게리 U.S. 본즈의 두 앨범 ''Dedication''과 ''On the Line''에서 백업을 제공하며 그의 경력을 다시 시작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밴 잔트는 스프링스틴과 함께 이 두 앨범을 프로듀싱했다. 각 앨범에는 스프링스틴과 밴 잔트의 곡, 그리고 케이준 클래식 "졸 블론"의 커버가 수록되었다. 이 앨범들의 성공으로 밴 잔트는 EMI와 솔로 음반 계약을 맺었다. 처음에는 밴드가 없었기에, 그는 1982년 데뷔 앨범 ''Men Without Women''을 녹음하기 위해 클래런스 클레몬스, 대니 페데리치, 개리 탤런트, 맥스 와인버그, 그리고 리치 로젠버그와 마크 펜더를 포함한 여러 주크스를 빌려왔다. 이 앨범은 리틀 스티븐 & 디사이플스 오브 소울이라는 이름으로 발매되었다.[8]

6. 한국과의 관계

E 스트리트 밴드의 음악은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음악과 함께 한국 팬들에게도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그의 진솔한 가사와 멜로디, E 스트리트 밴드의 강렬한 연주는 한국 팬들의 감성을 자극했다.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노래는 사회적 메시지를 담고 있어, 소외된 계층, 노동자들의 삶, 사회 문제에 대한 깊은 통찰을 보여준다. 이러한 메시지는 1980년대 한국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큰 공감대를 얻었다. 그의 노래에 담긴 저항 정신과 사회 비판 의식은 민주주의를 열망하던 한국 청년들에게 영감을 주었으며, 그의 음악은 단순한 팝송을 넘어 시대정신을 반영하는 상징으로 여겨졌다.

E 스트리트 밴드의 음악은 한국 사회에 다음과 같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시사점내용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스프링스틴의 노래는 소외된 계층과 노동자들의 어려움에 주목하며, 우리 사회의 그늘진 곳을 돌아보게 한다.
비판 의식의 중요성그의 음악은 사회 문제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제시하며,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고민을 촉구한다.
연대와 희망의 메시지스프링스틴의 노래는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연대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 사회에 긍정적인 에너지를 불어넣는다.


6. 1. 한국 팬덤 형성

E 스트리트 밴드의 음악은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음악과 함께 한국 팬들에게도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그의 진솔한 가사와 멜로디, 그리고 E 스트리트 밴드의 강렬한 연주는 한국 팬들의 감성을 자극했다.

E 스트리트 밴드와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한국 팬덤은 주로 1980년대 본 인 더 유에스에이의 발매를 기점으로 형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 앨범은 전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얻었으며, 한국에서도 많은 팬들을 확보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발매된 라이브 앨범 ''Live/1975–85''(1986)는 E 스트리트 밴드의 폭발적인 에너지를 생생하게 전달하며 팬덤을 더욱 확장시켰다.

2000년대 이후에도 뉴욕 시티 라이브(2001), 해머스미스 오데온 런던 '75(2006) 등 꾸준한 라이브 앨범 발매와 더 라이징(2002), 매직(2007)과 같은 스튜디오 앨범을 통해 새로운 팬들을 유입하며 팬덤을 유지, 확장해왔다. 특히, 2010년대에는 레킹 볼(2012), 하이 호프스(2014) 등의 앨범을 통해 사회 비판적인 메시지를 담아내며, 진보적인 성향의 한국 팬들에게 더욱 큰 호응을 얻었다.

6. 2. 사회적 메시지의 공감대

E 스트리트 밴드의 리더인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노래 가사는 사회적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의 노래는 단순한 사랑 이야기를 넘어, 소외된 계층, 노동자들의 삶, 그리고 사회 문제에 대한 깊은 통찰을 보여준다. 이러한 사회적 메시지는 특히 한국 사회, 그중에서도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큰 공감대를 얻었다.

스프링스틴의 노래는 1980년대 한국 민주화 운동 당시, 억압받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그의 노래에 담긴 저항 정신과 사회 비판 의식은 민주주의를 열망하던 한국 청년들에게 큰 영감을 주었으며, 그의 음악은 단순한 팝송을 넘어 시대정신을 반영하는 상징으로 여겨졌다.

E 스트리트 밴드의 음악은 한국 사회에 다음과 같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시사점내용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스프링스틴의 노래는 소외된 계층과 노동자들의 어려움에 주목하며, 우리 사회의 그늘진 곳을 돌아보게 한다.
비판 의식의 중요성그의 음악은 사회 문제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제시하며,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고민을 촉구한다.
연대와 희망의 메시지스프링스틴의 노래는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연대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 사회에 긍정적인 에너지를 불어넣는다.



E 스트리트 밴드의 음악은 단순한 엔터테인먼트를 넘어, 사회 구성원으로서 우리가 어떤 가치를 추구해야 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갈 수 있는지에 대한 깊은 고민을 하게 만든다. 특히, 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가 중요해지는 현대 사회에서 그의 음악은 여전히 큰 의미를 지닌다.

참조

[1] 웹사이트 Bruce Springsteen and The E Street Band Announce 2023 International Tour https://brucesprings[...] 2022-07-05
[2] 간행물 The Band on Bruce: Their Springsteen https://web.archive.[...] 2009-02-07
[3] 웹사이트 Bruce Springsteen Bands: from Rogues to E Street Band, passing from Castiles and Steel Mill http://www.brucespri[...]
[4] 웹사이트 How The E Street Band Got It's Name http://www.rockandro[...] 2017-02-08
[5] 뉴스 Years by Springsteen's side a gift for guitarist Nils Lofgren http://www.jsonline.[...] Milwaukee Journal Sentinel 2016-02-29
[6] 웹사이트 Press Release https://web.archive.[...] Shore Fire 2011-10-21
[7] 웹사이트 Press Release https://web.archive.[...] Shore Fire 2011-10-21
[8] 뉴스 Dates Are Set! Springsteen Revs Up E Street Machine For Fall http://www.backstree[...] Backstreets.com 2009-03-07
[9] 웹사이트 Statement http://www.shorefire[...] Shore Fire Media 2007-11-21
[10] 웹사이트 Backstreets.com: Springsteen News http://www.backstree[...] 2008-03-21
[11] 웹사이트 Danny Federici of E Street Band dies at 58 https://web.archive.[...] 2009 The Associated Press 2009-07-24
[12] 뉴스 Danny Federici dies; Springsteen concerts postponed https://www.sun-sent[...] 2008-04-17
[13] 간행물 E Street Band's Clarence Clemons Dies at 69 https://www.rollings[...] 2011-06-18
[14] 뉴스 Clarence Clemons, Springsteen's Soulful Sideman, Dies at 69 http://www.nytimes.c[...] 2011-06-19
[15] 간행물 Jake Clemons on Clarence: 'He's on That Stage Every Night' https://www.rollings[...] 2013-11-11
[16] 웹사이트 Clarence Clemons' Nephew Joining Bruce Springsteen and E-Street Band https://gothamist.co[...] 2012-02-09
[17] 웹사이트 Backstreets.com: Springsteen News http://www.backstree[...] 2008-03-21
[18] 뉴스 Springsteen concert postponed over bandmate's death http://www.sun-senti[...] 2008-04-17
[19] 뉴스 Springsteen Promises '12-Minute Party' at Halftime https://www.nytimes.[...] 2009-03-07
[20] 웹사이트 Shore Fire Media http://www.shorefire[...] 2008-12-02
[21] 웹사이트 Super Bowl Journal https://web.archive.[...] Brucespringsteen.com 2009-02-11
[22] 웹사이트 Springsteen's "Secret Weapon": How Jay Weinberg Scored a Spot in the E Street Band https://www.rollings[...] 2017-02-08
[23] 웹사이트 Clemons' Nephew to Play Sax on Springsteen Tour https://archive.toda[...] 2012-02-11
[24] 웹사이트 Inductee explorer - Rock & Roll Hall of Fame http://rockhall.com/[...]
[25] 웹사이트 Brucebase - 2014-04-10 - BARCLAYS CENTER, BROOKLYN, NY http://brucebase.wik[...]
[26] 간행물 Live! 2015-02
[27] 웹사이트 SPRINGSTEEN ROUNDUP: The end of the E Street Band?? Plus the latest Bruce news https://web.archive.[...] 2019-01-13
[28] 웹사이트 Bruce Springsteen on Broadway: No time for the E Street Band? https://www.app.com/[...]
[29] 웹사이트 Greasy Lake on Twitter https://twitter.com/[...]
[30] 웹사이트 Bruce Springsteen and the E Street Band: 'We ain't done yet,' Max says https://www.app.com/[...]
[31] 웹사이트 Sorry, Bruce Springsteen fans: The E Street Band won't tour in 2019 https://www.usatoday[...] 2018-12-04
[32] 웹사이트 Bruce Springsteen Reveals He Just Wrote an Entire Album for E Street Band to Tour Behind https://variety.com/[...] 2019-05-06
[33] 웹사이트 √ Springsteen intervistato a Roma: in studio con la E Street Band in autunno? https://www.rockol.i[...]
[34] 웹사이트 The Boss is coming: Springsteen says he will tour with E Street Band in 2020 https://www.nj.com/e[...] 2019-05-27
[35] 웹사이트 Bruce Springsteen and E Street Band: No tour in 2020? https://www.app.com/[...] 2020-02-12
[36] 웹사이트 Ghosts, Guitars, and the E Street Shuffle https://www.rollings[...] 2020-09-20
[37] 웹사이트 Bruce Springsteen and the E Street Band, Dua Lipa, Morgan Wallen to Perform on SNL https://www.spin.com[...] 2020-11-25
[38] 웹사이트 Bruce Springsteen Hints at New Music as He Accepts Woody Guthrie Prize https://www.billboar[...] 2021-05-13
[39] 웹사이트 Bruce Springsteen on Broadway and beyond: E Street Band tour, new music coming https://www.msn.com/[...] msn.com 2021-06-10
[40] 웹사이트 Max Weinberg talks about upcoming Jukebox shows, Springsteen tour and holiday magic https://www.msn.com/[...] 2021-12-14
[41] 뉴스 Bruce and the E Street Band are coming back to Dublin https://www.rte.ie/e[...] 2022-05-24
[42] 웹사이트 Steven Van Zandt on Fixed Setlists for the Springsteen Tour and 21 Years of The Underground Garage https://www.yahoo.co[...] 2023-03-24
[43] 웹사이트 Steve Van Zandt Defends Static Bruce Springsteen Setlists https://vermilioncou[...] 2023-03-29
[44] 웹사이트 E Street Band bassist Garry Tallent shuts down Bruce Springsteen setlist complaint https://www.app.com/[...] 2023-07-25
[45] 웹사이트 Inside Bruce Springsteen's health woes from 'dangerous' depression to throat surgery https://www.mirror.c[...] 2023-09-23
[46] 웹사이트 September 2023 Postponements https://brucesprings[...] 2023-09-06
[47] 웹사이트 2023 Postponements https://brucesprings[...] 2023-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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